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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보다 참혹한 난민들의 지옥도, 푸른 장벽

2차 대전의 포연 속, 독일 태생의 유대인 청년이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생의 아이러니를 심도있게 그렸던 1990년 미국의 4개 주요 비평가그룹으로부터 최우수 외국어영화로 선정되었던 ‘유로파 유로파(Europa Europa)’의 아그네츠카 홀랜드 감독의 최근작.   “모든 영화는 정치적이다”라는 그녀의 말대로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또한 정치적이다. 폴란드 출신의 거장 홀랜드의 영화들은 대부분 정치적, 역사적 사건에서 위기를 끌어내고 휴머니즘적인 메시지로 결론을 맺는다.   ‘푸른 장벽(Green Border)’은 국경을 넘어 안전한 곳으로 향하는 난민의 이야기다. 유럽의 난민 문제를 다루고 있는 이 영화 역시도 대단히 정치적이다. 홀랜드 감독은 국경의 참혹한 현장을 실제로 폴란드의 정치 현장으로 끌어온다. 영화는 개봉 후 치러진 폴란드 총선에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고 우익의 적대감을 증폭시켰다.     2021년 벨라루스는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흘러들어온 난민들을 폴란드로 보낸다. 숲이 우거진 국경 지대에서 양국의 군인들과 난민들이 충돌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난민들은 음식과 물이 떨어지고 신발도 필요하다. 그들을 몰아내려는 국경수비대의 억압을 견디지 못하고 추위와 굶주림에 비극적 죽음을 맞이하는 난민들이 늘어 간다.     은밀하게 촬영된 영화는 거의 다큐멘터리 톤으로 진행된다. 홀랜드 감독의 노련한 연출 아래 흑백으로 카메라에 담아낸 장면들은 많은 부분 사실에 기반한다. 시리아 가족이 겪는 곤경과 시련을 근접거리에서 관찰하면서 시작하는 영화는 두 나라 국경수비대의 인권침해를 생생하게 폭로한다. ‘푸른 장벽’은 비정한 현실이 픽션보다 더 참혹할 수 있음을 일깨워 주는 영화다.     억압을 행사해야 하는 위치에 있지만 늘 고심하는 국경수비대원 얀을 비롯, 위기에 휘말린 난민들을 도우려는 인권 운동가, 그들을 경계시하면서도 차마 외면하지 못하는 주민들 모두 ‘최소한의 양심’을 마음속에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희미한 선악의 경계 위에 서서 각자의 입장에 따라 정치적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     난민 문제는 유럽의 심각한 정치적 이슈임이 틀림없다. 모든 정치적 행위는 인간적 삶의 조건을 만들어내는 행위일 때 비로소 그 의미가 있다. 정치성이 강한 영화이지만 영화의 핵심 메시지는 이데올로기가 아닌, 인본주의에 있다. 억압과 착취의 건너편에서 다가오는 자비와 인도주의의 손길에 홀랜드 감독의 메시지가 있다. 영화 속 홀랜드의 메시지가 자못 육중하다. 김정 골든글로브 심사위원지옥도 픽션 난민 문제 최우수 외국어영화 홀랜드 감독

2024-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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